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남도(平安南道) 순천군(順川郡) 출신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수현(楡樹縣) 잡로하(卡路河)에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당시 중국 하얼빈에서 조선 독립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고려혁명군 결사단(決死團)이 활동하고 있었다. 최기호는 손성우(孫聖于)와 함께 1929년 9월경 고려혁명당 결사단에 가입했다.
1929년 10월 25일 오후 8시경 단장 백운봉(白雲蜂)의 지휘하에 9명의 고려혁명군 결사단원들이 하얼빈으로 이동했다.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일면가(一面街) 방면으로, 다른 한 조는 도리(道裡) 외국사도가(外國四道街) 42호의 이규은(李圭殷)의 집으로 향했다.
최기호‧김해룡(金海龍)‧김보형(金寶炯)‧손성우의 4명은 이규은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요구했다. 이때 이규은 집에 잠복하고 있던 하얼빈 일본영사관 경찰 6명이 결사단원 체포를 시도했다. 이에 최기호는 권총으로 쏘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끝내 체포되었다.
1930년 3월 19일 신의주경찰서에 압송되어 취조받고, 31일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4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신의주지방법원 : 1932. 4. 30)
- 가출옥(假出獄)의 건 구신(具申)(신의주형무소장 : 1935. 5. 31)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1. 1)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3. 29, 1932. 4. 23)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3. 27, 1932. 4. 23, 4. 29, 5. 5)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3. 2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5) 4(2)권 15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