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부령군(富寧郡) 사람이다. 중국 만주 길림성 연길현 상의향(尙義鄕) 제사갑(第四甲) 대북구(大北溝)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6월 16일경 박재하(朴載廈)의 집에서 이순(李淳)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에 참여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는 1927년 10월 2일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관련자들의 재판 날짜에 맞추어 대중시위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당일 북간도 용정(龍井)에 비가 내려 시위가 어려워지자 만주총국의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 등이 조선공산당 동만도구역국(東滿道區域局)의 책임자인 안기성(安基成)의 집에 모였다.
이를 일제 경찰이 포위하여 조직원 29명이 체포되었고, 이어서 간도지역의 한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때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 동불사(銅佛寺) 세포원으로 활동하던 차종수도 1927년 11월 7일 국자가에서 체포되었고, 간도일본총영사관 검사국에서 취조받았다.
이후 서울로 압송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928년 4월 30일 예심이 종결되었다. 1928년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1월 29일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8. 12. 27)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0. 27, 1930. 1. 2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部)(34)-요주의(要注意) 선인(鮮人)의 간도교육협회(間島敎育協會) 조직(組織)에 관한 건(간도총영사 : 1923. 9. 18)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국학간행회, 1999) 제17권 80면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국학간행회, 1999) 제40권 8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