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4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소속으로 평북 선천군(宣川郡) 남면(南面) 삼봉동(三峰洞)에서 삼봉주재소(三峰駐在所)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었으며,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할신(高轄信), 민사부장 이웅해(李雄海),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이 선출되었다. 지방 행정은 각 현에 총감(總監) 사무소를 설치해 총감 이하 임원을 두었다. 한인자치를 위해서 각 지역별로 총관소(總管所)를 설치하였다. 1922년 말~1923년 초에 개최된 통의부 제1회 중앙의회에서 각 지역에 총 16개의 총관소를 두기로 했으며, 총감은 1,000호(戶)의 장(長)으로 하고 담당구역을 4~5개로 나누었다. 총관소에는 총감 이하 구장(區長)ㆍ참사(參事)ㆍ서기(書記)ㆍ검무감(檢務監)ㆍ검무원(檢務員)ㆍ통신원(通信員)을 각 1명씩 두었다.
1924년 12월 1일 대한통의부 소속 노원근(盧元根)ㆍ김문학(金文學)ㆍ방대국(方大國) 등 6명과 삼봉주재소 공격 계획을 세우고, 같은 달 17일 노원근과 함께 주재소 순사의 숫자와 무기 창고 등을 탐지하였다. 18일에는 장순사(張巡査)의 집에서 기병총(騎兵銃) 1자루와 탄환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일 삼봉주재소를 공격하여 일본 순사 1인을 처단하고 부속창고에 불을 놓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5년 11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 살인 등으로 징역 7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0년 9월 4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1978) 제10집 949~952면, 제14집 932면
- 時代日報(1925. 11. 19)
- 東亞日報(1925. 11. 18, 1925. 11. 21)
- 判決文(高等法院 : 1926.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