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사람으로 중국 관전현(寬甸縣) 하루하(下漏河)로 이주하였다. 1923년 음력 12월 대한통의부 의용군(義勇軍) 제8중대에 가입했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주지역의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확대 발전하여 조직된 단체로 의용군을 편제하여 무장투쟁에 주력했다.
지택인은 1924년 음력 2월 초순부터 대한통의부 부사(副士) 김태묵(金泰黙) 등 7~8명의 대원들과 함께 평안북도 벽동군 대평면(大平面) 평동(平洞)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김영규(金永奎)‧최학표(崔鶴表)‧이원엽(李元燁)‧최치관(崔治貫) 등으로부터 수 백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던 1929년 12월 12일 안동현(安東縣)을 거쳐 국내로 잠입하다가 밀정에게 속아 체포되었다.
1930년 9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4년 8월 3일로 감형되어 1934년 6월 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2. 24, 10. 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 7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