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2년 4월 무렵,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 화수전자(樺樹甸子)에서 대한의군부에 가입하고, 의무금 징수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력 7월 무렵 대한의군부 제1중대 제1소대 상등병이 된 이후, 김원일(金元一) 등과 함께 8월 15일까지 군사교육을 받았다.
1922년 8월 25일 대한의군부 제1중대 제1소대 통신원에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국경 지역의 일본군의 정황을 정찰하는 임무를 맡아 힘을 기울였다. 1923년 8월 5일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과 일제 주요 기관을 공격하기 위해 대한의군부 제1중대 제1소대장 이경일(李京日)의 지휘에 따라 중국 봉천성 관전현에서 국내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8월 7일 장기후(張基厚)의 부대에 배치되어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廣坪面)에 위치한 청성진세관출장소(淸城鎭稅關出張所)를 공격하였다. 이날 공격으로 인하여 1923년 8월 7일 김용득(金龍得)과 김용복(金龍福)·정국민(鄭國敏)·황이헌(黃利憲)과 함께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5년 2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방화, 살인 및 강도’ 등을 이유로 징역 6년을 받았다.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5년 4월 8일 신의주형무소로 이감되었고, 1930년 3월 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평양복심법원:1925. 2. 2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조선일보(朝鮮日報)(1924. 12. 2, 12. 5)
- 동아일보(東亞日報)(1924. 12. 2, 1925. 2. 2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3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