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함경남도(咸鏡南道) 북청군(北靑郡)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5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으로 건너가 북간도 대왕현(大王縣)에 지부를 두고 있던 대한독립군비단의 단원 김을용(金乙龍)의 권유를 받아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였다. 가입 후 군비단에서 설치한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하여 약 1개월여간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 김을용으로부터 북청군에서 군자금 모집 임무를 위탁받아 방을남(方乙南)과 함께 사령서와 군자금 영수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국무원령 제1호 등 독립운동 사상을 선전하는 문서들을 송부하였다. 동시에 군비단 본부와의 연락을 위해 전권(全權), 신정수(申禎洙) 등과 함께 북청군에 군비단 제13지단을 설치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20년 11월 장백현(長白縣)에서 국내로 들어온 군비단 단원 정태(鄭泰), 한구(韓龜)와 북청군 이망지리에 위치한 주병택(朱炳澤)의 집에서 만나, 북청군 내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집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에 음력 11월 16일 북청군 덕성면(德城面) 죽전리(竹田里)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6월 8일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서울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가택침입, 강도미수’ 등을 이유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지만, 1921년 12월 7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4년 징역 3년 9월로 감형되었고, 1925년 3월 28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6. 9, 6. 11, 6. 22)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9. 14, 10. 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685~6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자료집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43, 94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5권 3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