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중국 (中國) 동삼성 (東三省) 동녕현 (東寧縣) 동경성 (東京城) 에서 부친 (父親) 서일 (徐一) 의 뒤를 이어 국조단군 (國祖檀君) 을 신봉 (信奉) 하는 대종교 (大倧敎) 에 입교 (入敎) 하여 항일운동 (抗日運動) 을 하였으며 1932년 대종교인 (大倧敎人) 안희제 (安熙濟) 가 발해농장 (渤海農場) 를 개척 (開拓) 하고 독립운동 (獨立運動) 의 기지 거점 (基地據點) 으로 활용 (活用) 하면서 비밀리 (秘密裡) 에 독립군 (獨立軍) 과 제휴 (提携) 하여 대봉기 (大蜂起) 를 계획 (計劃) 하던중 천전건축홍보문 (天殿建築弘報文) 을 날조 (捏造) 한 일제 (日帝) 의 탄압 (彈壓) 으로 피체 (被逮) 되어 1년 1월 13일간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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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함북 경원(慶源) 사람이다.
대종교(大倧敎) 종사(宗師)인 서 일(徐一) 선생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친의 뒤를 따라 국조(國祖) 단군(檀君)을 신봉하는 대종교에 입교한 뒤 교세 확장을 위한 전교 사업에 힘썼다.
대종교인 안희제(安熙濟)가 1932년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성(東京城) 일대에 토지를 매입 개간하여 발해농장(渤海農場)을 개척하고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게 되자, 이곳에다 대종교 총본사(總本司)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발해 고궁 유지(遺址)에 천진전(天眞殿)을 건립하는 한편, 교육기관으로 대종학원(大倧學園)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천진전 건립을 추진하면서 이를 후원하기 위해 이극로(李克魯)가 윤세복(尹世復)에게 〈널리 펴는 말〉이라는 후원문을 지어 보낸 것을 빌미로 일제는 대종교에 대해 일대 탄압을 가하고 중심인물들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1942년 11월 19일에 일어난 이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말미암아 단애종사(檀崖宗師) 윤세복 이하 대종교 중심인물 21명이 붙잡혔는데, 그도 역시 이때 일경에 붙잡혔다.
그 뒤 1944년 1월 2일 목단강(牧丹江) 경무청 액하(掖河) 감옥에서 출옥한 뒤에도 대종교 전교를 위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800∼804면
- 대종교중광60년사(대종교총본사, 1971. 10. 3) 463면
- 호구초건(합이빈시공안국, 1991. 6. 8)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면
- 확인서(대종교총본사, 1991. 9. 13)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571∼5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