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징모과장(徵募課長)으로 함북 온성군(穩城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7월 함북 온성군 온성면(穩城面)에서 이창수(李昌秀)로부터 북간도의 대한북로독군부 최진동(崔振東) 명의로 된 독군부 역원선임장(役員選任狀)을 받고 독군부에 가입하였다. 선임장에는 경찰과장 변남조(邊南朝), 징모과장 조정훈, 재무과장 이서오(李瑞五), 경찰과원에는 구창순(具昌順), 한석규(韓錫圭), 징모과원에는 오기준(吳琪準), 오현준(吳現準), 안태현(安泰現), 인사과원에는 안봉현(安鳳鉉), 서기에 전도영(全道榮)이 임명되었고, 기타 역원은 유병선(兪秉璿), 전석종(全錫宗), 우동규(禹東奎), 조남극(趙南極), 지창록(池昌祿), 이병송(李炳松), 박문일(朴文一) 등이 임명되었다. 같은 해 7월 독군부로부터 군용짚신 모집 명령을 받은 조정훈 등은 이서오, 오기준, 오현준, 구창순, 우동규 등과 상의하여 군용짚신 구입에 필요한 군자금을 마련하기로 논의하였다. 조정훈 등은 같은 면 동화동(東和洞) 일대에서 각기 군자금 120원을 모집하여 이 돈으로 오기준이 짚신 300켤레를 구입하여 9월경 독군부로 보냈다.
한편,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면서 1920년 8월에는 독군부에서 교부한 독립사상을 선전하는 선유문(宣諭文)을 등사·배포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21년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7개월 11일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1. 11. 9)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1. 12. 23)
- 獨立新聞(1921. 11.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687~691, 1172~11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