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17년 재중일본공사
1921년 9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8년 5월 러시아령에서 전제익 의진에 입대한 후 부하 300여 명을 이끌고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으로 진격해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9년에는 연해주 노브키예포스크(煙秋) 근교에서 안중근(安重根) 등과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하였다. 이후 연해주 일대의 70여 곳에서 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1910년 6월에는 국민회 수청신영지방회(水淸新英地方會)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4년 6월경 스찬(水淸)에서 합성학교 설립에 관여하고, 같은 달 노브키예포스크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才亨)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하기도 했다. 1917년에는 재중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에 대한 참간장(斬奸狀)을 제출하고 처단 실행자로 활동했다. 1918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한 뒤 김알렉산드라와 협의하여 노동회(勞動會)로 변경했고, 1919년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독립단(韓國獨立團)을 결성한 후 부단장으로 국내로 진격해 일본 관헌을 공격한 바 있다. 1920년 12월 치타(知多)에서 고려공산당 동아한인부를 결성해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1년 9월 하얼빈(哈爾賓)에서 한국의용군 결사대 결성 후 대장으로 동지 규합 및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협력하였다. 1920년 11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2년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스찬에서 야학교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서비리아(在西比利亞)(3),(5),(6),(11)
- 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재만주(在滿洲)의 부(4)
- 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재구미(在歐米)(7)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2001) 제37권 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1096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384면, 제4권 231면, 제18권 262, 269면
- 조선민족 해방운동에 참가하던 빨치산 회상기(작성연대 미상, 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