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구한말 대한제국(大韓帝國) 육군 기병대에 입대하여 군인으로서 복무하였다.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분개하여 북간도지역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안도현(安圖縣) 내도산(內島山)에 들어가 구한국군인 및 의병들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 임시군정부(臨時軍政府)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동년 9월 조동식은 최재용(崔載容)·엄홍구(嚴弘龜) 등과 함께 군자금과 곡식 등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10월 23일 상해 임시정부의 권고로 대한정의단이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로 개칭되자, 이 단체에서 교련과장 및 제1중대장으로서 군인의 교련과 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였다. 1919년 12월 당시 조동식과 함께 이 단체에서 활동한 인물은 총재 이규(李圭), 부총재 강희(姜熹), 비서과장 겸 통신과장 홍우찬(洪祐贊), 서무과장 겸 회계과장 강두희(康斗熙), 외교과장 길성익(吉星翼), 편집과장 윤석우(尹錫禹), 사령관 이동주(李東柱), 검사과장 김정식(金鼎植), 심판과장 연병준(延秉俊), 교련교관 원덕주(元德柱)·오일(吳一)·이만진(李晩晉), 참모부장 이동주(겸임), 군무부장 강익성(姜翼成), 경위부장 김병순(金炳淳), 경리부장 강이중(姜以中), 준비과장 박윤희(朴允熙), 초모과장 박성호(朴星浩), 공장과장 조병규(趙炳奎), 측량과장 윤석우(겸임), 사찰과장 석광옥(石光玉), 순찰과장 강도준(姜道俊), 출납과장 김도원(金道源), 모연과장 강호련(姜浩連) 등이다.
이처럼 세밀한 조직을 가진 대한정의군정사는 부근지역에서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및 황용기(黃龍起)·이규철(李揆哲) 등의 동맹결사대 등 다른 무장독립운동단체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적측의 삼엄한 경비를 돌파하고 함경남도의 갑산(甲山)·삼수(三水)지방 및 함경북도의 무산(茂山) 지방으로 진격을 시도하여 적의 헌병대, 경찰관서 및 관공서를 습격 분쇄하기도 하였다. 특히 중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조동식은 탁월한 전략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조동식은 1920년에는 광복단(光復團)의 중대장이 되어 백두산 부근에 주둔하면서 일제와 교전을 준비하였다.
한편 일제는 만주지역에 근거하여 국내에 진공하고 있는 한국독립군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간도침입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20년 10월 2일 왕사해(王四海) 등을 두목으로 한 중국 마적을 매수하여 그들의 훈춘(琿春) 영사관 분관을 습격하도록 하였다. 이를 구실로 일본정부는 영사관 및 거류민 보호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1920년 10월 7일 급속히 군대를 간도로 출병시켰다.
출동지구는 제1 훈춘방면, 제2 왕청(汪淸)방면, 제3 용정(龍井)방면, 제4는 도문강(圖們江) 대안부근이었다. 훈춘방면은 기림(磯林)소장이, 왕청방면은 대촌(大村)대좌가, 용정방면을 동소장(東少將)이, 도문강 대안은 경찰관, 헌병 및 수비대에서 수시로 강을 건너 진출하여 독립군을 소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공격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등과의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 등에서 패함으로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격분한 일본군은 그에 대한 보복 행위로 독립군의 모체인 한인사회와 항일단체·학교·교회 등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여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불리는 간도지역의 한인 참살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이에 독립군 단체들은 재만한인 사회에 피해를 덜어주기 위해 만주와 접해있는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0년 10월 일단 밀산(密山)에서 체제를 정비하고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였다. 이 조직에서 조동식은 오광선(吳光善) 등과 함께 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한 조동식은 1921년 6월 흑하(黑河) 부근 자유시(自由市, 현재의 스보보드니)에서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을 겪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새기고, 이에 이르크츠크에 있다가 신경쇠약에 걸려 1922년 봄 서거하였다.
조동식이 사망하자 평소 용감한 담력과 열렬한 기개를 아는 이들은 애절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신문(1922. 10. 21)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7·308·321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57·5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6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335∼337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4·75·1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