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32년 경북 칠곡군 왜관(倭館)에서 최소복(崔小福)·이석(李錫)·이병기(李炳基)·김주석(金周錫) 등과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農民組合建設準備協議會)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협의회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독서회를 결성·개최하는 한편 표면으로는 군재 각지에 농민야학을 설치하면서 농민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던 중 그는 1934년 1월 일경에 붙잡혀 1935년 12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37년 6월 출옥한 그는 침체된 칠곡지역의 농민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야학회나 독서회 등을 통하여 농민층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해 갔다. 이 때 이들의 운동방침은 일제의 경계망을 피하기 위하여 농촌진흥조합이나 그 부속 야학회 등과 같은 어용조직에 들어가 농민을 의식적으로 계몽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활동하던 중 1939년 가을에 다시 붙잡혀 2년 반 동안 미결수로 고문당하다가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형사사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