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4월 보성전문학교 (普成專門學校) 재학시 조선학생과학연구회 (朝鮮學生科學硏究會) 의 집행위원장 (執行委員長) 으로 활동 (活動)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북경 (北京) 의 화북대학 (華北大學) 에 입학하고 동시에 북경반제동맹 (北京反帝同盟) 에 가입 (加入) 하여 의열단장 (義烈團長) 김원봉 (金元鳳) 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 (活動) 하던 중 1931. 9월 만주사변 (滿洲事變) 이 발생하자 활동의 시급함을 자각하고 1932. 2월 하순 (下旬) 에 귀국하여 서울에 머무르면서 동지를 규합 ,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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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강원도 삼척(三陟) 사람이다.
1930년 4월 서울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 재학 시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졸업과 함께 중국 북경(北京)으로 가서 화북대학(華北大學)에 입학하고 동시에 북경반제동맹(北京反帝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며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1931년 9월 일제의 대륙침략을 목적하는 소위 만주사변(滿洲事變)이 일어나자 일제를 타도하기 위한 활동의 시급함을 자각하고 1932년 2월 하순에 귀국하여 서울에 머무르면서 동지를 규합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4월 2일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에 발각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1932년 7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 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운동에 종사하던 중 1945년 8월 초 광복을 앞두고 은밀히 입국하여 강원도 춘천에서 조국광복을 맞이하고 건국운동에도 참가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34면
- 동아일보(1932. 4. 15, 4. 27, 6. 28, 7. 5)
- 조선일보(1932. 6. 28,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