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강원도 삼척(三陟) 사람이다.
1919년 4월 14일 강원도 삼척군(三陟郡)의 삼척공립보통학교(三陟公立普通學校) 2학년 재학중 4학년생인 김달하(金達河)·오원모(吳元模)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한 후 이튿날인 4월 15일 동교 운동장에서 동교생(同校生) 180여명을 규합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며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1924년 10월 14일 부산공립상업학교(公立商業學校) 2학년 재학중 학교측에 교사증축(校舍增築), 조선어시간 연장, 영어·박물교사(博物敎師) 교체, 이화기계(理化機械) 완전설비 등을 요구하며 2·3학년생 140여명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가 퇴학당하고 평양사립숭신학교(平壤私立崇信學校) 2학년에 편입 1926년 5월 중도퇴학하고 귀향(歸鄕)하였다.
1927년 8월∼1928년 5월 조선일보 삼척지국(三陟支局) 기자가 되어 1927년 10월경 정건화(鄭健和)와 함께 삼척군(三陟郡) 청년동맹을 조직하였으며 1928년 3월 신간회(新幹會) 삼척지회(三陟支會)를 조직 활동하였다.
1931년 5월 중순경 삼척청년동맹(三陟靑年同盟) 집행위원장으로서 이상인(李尙寅)·박내빈(朴來賓)·오원모(吳元模) 등과 함께 삼척군내(三陟郡內)에 노동조합과 농민조합 조직을 협의하고 같은 해 10월말 'K회(會)'를 조직하여 교수부(敎授部) 책임을 맡았다.
1931년 11월 30일 삼척군(三陟郡) 삼척면(三陟面) 정상리(汀上里) 산중에서 'K회'의 모임을 개최하여 근덕면(近德面)과 노곡면(盧谷面) 간의 도로개수공사에 면민(面民)이 부당하게 부역되는 것을 계기로 부역반대시위(賦役反對示威)를 대규모로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근덕면(近德面) 교가(交柯) 장날에 면민 300여명을 규합하여 근덕면사무소(近德面事務所)를 습격하는 등 시위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1932년 3월 31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江陵支廳)에서 소위 주거침입, 보안법, 폭력 등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33년 7월 24일 삼척면 오분리(梧粉里) 해안에서 변소봉(卞小鳳)·정석대(鄭錫大)·이상인(李尙寅)·박내빈(朴來賓) 등과 함께 삼척군내에 노동공작위원회를 조직하고 인근 각면(各面)에 농민조합과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로 하여 각면(各面)을 책임 분담하였을 때 중앙부 책임을 맡아 수차례 회합을 가지며 활동하다가 동년(同年) 11월 일경에게 붙잡혔다.
1936년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4. 10. 17)
- 조선일보(1932. 1. 6)
- 판결문(1936. 12. 23 경성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63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46·2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755·756면
- 실직문화론총(삼척향토문화연구회, 1989. 10. 22) 제1집 24·25·27·28·30∼3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790∼797·845·8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