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길주(吉州) 사람이다.
1916년 현재 만주 간도 태랍자(太拉子) 장재촌(長財村)의 창동학교(彰東學校)교장으로 교육을 통하여 애국지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창동학교 및 명동학교(明東學校) 교직원 120명으로 항일투쟁결사대인 충열대(忠烈隊)를 조직, 1919년 3월 13일 용정(龍井)에서 있었던 독립선언식 및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를 조직, 부회장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시 노령(露領)방면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명동촌 태랍자(明東村太拉子)로 돌아와 김 정(金精)·김상진(金尙鎭)과 정동학교 교사 백유창(白楡昌)·지 송(池松) 등과 함께 국내진입 및 군자금 모집과 일본밀정 주살을 위한 폭탄제조를 계획하기도 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을 위한 통일체로서 대한독립기성총회를 조직하여 그 부회장으로서 회장 구춘선(具春先)을 비롯하여 최원일(崔元一)·신명덕(申明德)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리고 파리강화회의의 진전을 보아 명동학교를 중심으로 결사대를 조직, 국내로 밀고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공격 및 파괴용으로 천보산(天寶山) 광업용 폭발물을 입수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내의 독립운동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에 한창섭(韓昌燮)과 함께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0년 1월에는 명동학교 학생 및 졸업생을 중심으로 정행단(正行團)을 조직하여 무장활동을 시도하였으며, 김하석(金夏錫)·남세극(南世極)·정재면(鄭載冕) 등과 국민회지회 설치계획을 세워, 동년 2월 화룡현 지신사 장재촌(智新社長財村)에 국민회 남부지방총회(南部地方總會)를 조직하고 그 회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동년 3월에는 국자가(局子街)의 간민회분회장(墾民會分會長)으로서 항일독립운동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또한 동년 12월에는 총합부(總合部)를 설립하여 구춘선(具春先)을 총합부장으로 추대하고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노령암살대(露領暗殺隊) 200여명을 조직하여 국내진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격렬한 항일투쟁사실은 일군의 표적이 되어, 1921년 1월 일군은 마침내 화룡현지사(和龍縣知事) 왕명신(王銘紳)에게 압력을 가해왔으며, 일군토벌대를 파견하여 그의 집을 소각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그의 일가는 사전 피신하였으나 이후의 항일투쟁 사실에 대하여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776·796·805·812·820·821·904·102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21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10·23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112·120·267·42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97·7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6권 1098·10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