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한인들의 자치와 독립군 모집에 주력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었으며,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총장에는 김동삼(金東三)이 선출되었고 부총장은 채상덕(蔡相悳)이 되었다.
통의부 제1회 중앙의회에서는 각 지역에 총 16개의 총관소를 두기로 하였으며, 총감(總監)은 1,000호(戶)의 장(長)으로 하고 담당구역을 4~5개로 나누었다. 총관소에는 총감 이하 구장(區長),참사(參事),서기(書記),검무감(檢務監),검무원(檢務員),통신원(通信員)을 각 1명씩 두었다.
1922년 8월말에는 통합 무력부대로서 의용군을 편성하여 무장투쟁에도 주력하였다. 이후 대한통의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광정단(匡正團) 등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꾸준히 연계하며 공동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11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면서 상당수가 이에 흡수되었다.
정득영은 평안북도(平安北道) 구성군(龜城郡) 서산면(西山面) 입석동(立石洞)출신이며,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 즙사하(葺沙河)에 거주하였다. 1919년 10월 중국 봉천성 집안현에서 조선인조합 구장(區長)으로 활동 중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였다. 동년(同年) 11월 동단(同團) 소모장(召集長)으로 활동하였으며, 1922년 8월 집서지단장(輯西支團長)을 역임하였고 동년 음 11월 집동지단장(輯東支團長)을 역임하였다. 1922년 9월 환인현(桓仁縣)에서 개최된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 동단(同團)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23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지방총관(地方總官)을 역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西間島地方 不逞鮮人團의 統一에 관한 건(朝鮮總督府 警務局:1922. 10. 2) 南滿韓族統一會 決議布告文 入手(關東廳警務局:1922. 10. 4) 南滿韓族統一會 決議事項 및 職員 布告文 入手에 관한 건(通化分館主任 本田選:1922. 9.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大韓統義府 中央會議에 관한 건(朝鮮總督府 警務局:1923. 3. 15) 大韓統義府 中央議會 議決文 公布(關東廳警務局:1923. 2. 2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5)
- 輯安縣 및 그 附近에 있어서 不逞鮮人의 一般狀況(關東廳警務局:1922. 8.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3)
- 獨立新聞(1922. 2. 20, 1923. 1. 10, 1923. 3. 1)
- 在滿 韓人의 獨立運動 情況(關東軍參謀部:1919. 10.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2)
- 金天鳳 判決文(高等法院:1926. 12. 27)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 1934) 227면
- 鮮人 騷擾事件 1(關東軍參謀部:1919. 11.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1)
- 輯安縣 獨立團과 鮮人組合支部의 情況, (關東軍參謀部:1919. 11.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