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4월 평북 (平北) 의주군 (義州郡) 고관면 (古館面) 에서 출옥 (出獄) 하여 온 백운한 (白雲翰) 이 일제 (日帝) 의 주구배 (走狗輩) 를 주살 (誅殺) 한 거사 (擧事) 에 연좌 (連坐) 되어 수차 (數次) 왜경 (倭警) 으로부터 혹독 (酷毒) 한 조사 (調査) 를 받고 왜경 (倭警) 의 방화 (放火) 로 가옥 (家屋) 이 소실 (燒失) 되고 전가족 (全家族) 이 구타 당 (毆打當) 하는 수모 (受侮) 를 당 (當) 하여 아들 홍주 (洪疇) 와 함께 중국 (中國) 동삼성 (東三省) 으로 망명 (亡命) 하여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국내총지단장 (國內總支團長) 이 되어 단원 모집 (團員募集) 과 적기관 파괴 (敵機關破壞) 등을 위하여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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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관면(古館面)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아들 홍 주(洪疇 : 1962년 독립장)와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에 참가 활동하였다.
1920년 4월 고향에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었다가 출옥한 백운한(白雲翰)이 복수심에 불타서 일제의 주구배를 주살할 때 거사에 동참함으로써 일경으로부터 혹독한 조사를 받았으며 일경의 방화로 가옥이 소실당하고 전가족이 모욕과 구타를 당하는 수모가 계속되자 마침내 아들 홍 주와 함께 중국(中國)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였다.
동년 5월경 동삼성(東三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국내 총지단장(總支團長)이 되어 단원모집과 적기관(敵機關)등을 파괴하기 위하여 수년동안 활동하였다. 한편 아들 홍 주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 밑에서 회계를 맡아보며 활동하였다.
1921년 이후 아들 홍 주와 함께 의군부(義軍府), 참의부(參議府)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2년 소위 만주사변(滿洲事變) 후에는 관전현(寬甸縣) 고루자촌(古樓子村)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6면
- 광복투쟁의 선구자(이현희) 300·30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249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302·309∼3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