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성군(鏡城郡) 출신으로 중국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하여 사립용진소학교(私立勇進小學校) 교원(敎員)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1927년 4월 17일 김복만(金福萬)과 김형복(金衡福)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구역국(東滿道區域局)에 가입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는 1927년 10월 2일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관련자들의 재판 날짜에 맞춘 대중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당일 북간도 용정(龍井)에 비가 내려 시위를 하지 못했다. 이에 만주총국의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 등이 조선공산당 동만도구역국(東滿道區域局)의 책임자인 안기성(安基成)의 집에 모였다.
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이 최원택 등을 포위하여 29명의 조직원이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이들의 재판은 1927년 11월부터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진행되어, 1928년 5월에 종결되었다.
한편 일제는 임동원 등 제1차 간도공산당 사건 관계자들에게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였다. 임동원은 1928년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9년 1월 4일 기각되었다.
그에따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1월 30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이후에도 중국공산당 연길현위원회(延吉縣委員會) 국가가 특별지부(特別支部) 책임으로 활동하다가 1933년 4월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31. 12. 27)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10. 27, 1928. 5. 3, 11. 27, 1929. 1. 10. 1. 16, 1930. 1. 30)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0. 30, 1928. 5. 1, 11. 27, 11. 30, 1929. 1. 5, 1930. 1. 28)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10. 30)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고려서림, 1989) 제17권 63면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고려서림, 1990) 제40권 860면
- 간도급만선접양지방 치안정황보고잡찬 제10권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