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이병걸은 함경남도(咸鏡南道) 홍원군(洪原郡) 희현면(希賢面)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의식이 고양되어 독립운동 참여 방법을 모색했다. 4월 12일 중국 연길현 춘양향(春陽鄕) 북하마탕구(北蛤蟆塘區) 한영휘(韓英輝)의 권유로 혁명운동자후원회(MOPR)에 가입했다.
그 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구역국(東滿道區域局) 혁명운동자후원회 서기로 한별(韓別)‧한흥빈(韓興彬)‧한영휘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북하마탕구(北蛤蟆塘區)에서는 매월 2회씩 강좌를 개최하였는데, 이병걸은 혁명운동자후원회 가입 후 강좌에 3회 참석했다. 또한 동년 7월경에 황빈(黃彬)의 권유로 농민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만주지역의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급진적인 대중투쟁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5.30간도봉기’를 일으켰다. 간도지역의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2,000명 이상 체포되었다.
이병걸도 간도총영사관 경찰서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1930년 6월 22일부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취조를 받고 8월 1일 예심이 청구되었다. 1931년 12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豫審終結決定)(경성지방법원 : 1931. 2. 3)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31. 12. 26)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6. 22, 8. 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6. 27, 1933. 3. 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2. 6~15)
- 사상사건기소장(思想事件起訴狀) 판정판결사철(判定判決寫綴)(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0)
- 재소자신분카드(국사편찬위원회 소장)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경성지방법원 형사사건기록(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 제98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