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 7월 전북 (全北) 남원 (南原) 에서 기의 (起義) 하여 1909. 3월까지 수습명 (數拾名) 또는 수백명 (數百名) 의 부하 (部下) 를 인솔 (引率) 하고 전라도 (全羅道) 구례 (求禮) 순창 (淳昌) 고부 (古阜) 태인 (泰仁) 담양 (潭陽) 경남 (慶南) 안의 (安義) 거창 (居昌) 하동 (河東) 등 각지 (各地) 에서 활약 (活躍) 하면서 순사 주재소 (巡査駐在所) 우편취급소 (郵便取扱所) 군청 (郡廳) 등을 공격 (攻擊) 하고 일인 (日人) 처단 (處斷) 및 군자금 모집 (軍資金募集) 등 항일 의병투쟁 (抗日義兵鬪爭) 을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교수 (絞首) 로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06년 7월 전북 남원에서 기의(起義) 1908년 음력 2월까지 40∼500여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구례(求禮)·담양(潭陽) 그리고 경남 거창(居昌)·하동(河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그후 1908년 4월경에는 순창(淳昌)·태인(泰仁)과 음력 7월에는 고부(古阜) 및 순창에서 활약하면서 28일에는 90여 명을 인솔하고 순창 읍내에 진격하여 우편취급소를 공격, 일인 2명을 처단하였다.
동년 음력 8월에는 의병 40여 명을 인솔하고 구례(求禮)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였으며 음력 9월에도 의병 400여 명을 인솔하고 경남 안의군청(安義郡廳)을 공격하였다.
그후 1909년 3월 순창·태인 등 각 군에서 활약하다 붙잡혀 동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소위 강도·모살(謀殺)·방화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아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다가 취하, 동년 11월 30일 대구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652·653·680·734·84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