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음력 4월 경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년 중국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환남지단(桓南支團) 서기(書記),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議府) 환안지방(桓安地方) 총감소(總監所) 검무감(檢務監), 1924년 참의부(參議府) 환안지방 총감소 검무감, 1929년 국민부(國民府) 중앙집행위원, 1930년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제4대장 등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음력 3월경 중국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독립단 환남지단 서기, 1922년 음력 2월경에는 동단(同團) 검무감으로 활동하였다. 검무관은 검무원 2~4명을 지휘하며 지단 관할구역인 환인현 이차구, 대협피구(大夾皮溝), 소래피구(小夾皮溝), 노흑첨자(老黑尖子)에 거주하는 한인(韓人)의 민ㆍ형사사건의 검색 및 재판을 하며, 벌금과 태형 등의 형벌을 부과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1922년 7월경 대한통의부 환안지방 총감소 검무감, 1924년 2월경 참의부 환안지방 총감소 검무감, 1926년 11월 동(同) 총감소 총관(總管)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음력 2월에는 참의부 중앙학무위원(中央學務委員), 같은 해 음력 7월에는 참의장(參議長) 대리(代理)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음력 4월경 국민부 중앙집행위원, 같은 해 음력 5월 총무부(總務部) 외무집행위원(外務執行委員), 1930년 음력 9월 조선혁명군 제4부장 등으로 활동하다 1930년 11월 21일 환인현 마권자(馬圈子) 요자구(鬧子溝)에서 중국 공안대(公安隊)에 체포되어 일본 봉천영사관경찰서(奉天領事館警察署)로 압송되었다. 조선혁명군은 1927년 9월에 개최된 정의부 중앙회의(中央會議)에서 정의부 의용군(義勇軍)의 명칭을 조선혁명군으로 변경하였으며, 1929년 4월 정의부 주도세력이 국민부를 결성하자 그대로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휘하의 군사조직으로 활동하였으며, 만주사변 이전에는 주로 친일 세력 숙청, 교민 보호, 국내 진입작전에 의한 일제 기관 파괴 및 일제 관헌 등에 대한 응징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1931년 4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 : 1931. 4. 13)
- 假出獄關係書類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1934) 28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414~434, 467~48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472~4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