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북 명천(明川) 사람이다.
의군단원(義軍團圓)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의군단은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단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며,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평(高平), 서무부장 이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의군단원으로 북간도 연길현(延吉縣) 지인사(智仁社) 의란구(依蘭溝)에서 거주하던 이억준은 1920년 음력 7월 중 무기운반을 담당하였으며, 1921년 일본군들이 재만동포들을 학살할 때에는 소백초구(小百草溝) 상촌(上村)에 피신하여 있었다.
1921년 음력 9월 17일에는 장남환(張南煥)이 처단한 밀정 2명을 매장하는 일을 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강도살인 혐의로 사형을 받고, 동년 4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총독부관보(1922. 4. 22)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817면
- 독립신문(1921. 11. 11, 1922.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