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시우는 1916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국자가(局子街) 적안평(赤岸坪)에서 배문의숙(培文義塾)의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에는 파리강화회의 파견대표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최봉렬(崔鳳烈) 등과 함께 적안평 지방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동년(同年) 9월 안도현(安圖縣) 사방정자에서 결성된 대한독립 단지결사대(斷指決死隊)의 대장이 되었으며, 1919년 9월 11일 안도현(安圖縣)과 화룡현(和龍縣) 이도구(二道溝) 유동(楡洞)에서 격문을 배포하고 군자금과 식량을 모집하였다. 1922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총재로 활동하였다. 동단(同團)은 1919년 3·1운동 직후 김성극과 김성륜(金聖倫),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공교회(孔敎會) 인물들을 중심으로 왕청현(汪淸縣)의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 일대에서 편성한 독립군단이었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다. 이후 이시우는 안도현에 근거지를 두고 김성극(金星極) 등과 결속을 강화하여 약 200명의 대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110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597~598, 597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제27권 209, 210, 215, 216, 226면
- 安圖縣方面에서 不逞鮮人의 狀況(1919. 10. 10)
- 間島方面의 9月 中旬頃에 얻은 情報에 기초한 抗日鮮人集合의 情況 (1919. 10. 10)
- 安圖縣에서 韓族獨立運動(1919. 10. 7)
- 每日申報(1919. 11. 5)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2권 854·855·865·870·1018면, 제3권 5·7·14·74·448·880면
- 間島地方不逞鮮人 獨立運動情況(1919. 9. 15)
- 斷指決死隊首領 檢拳의 件(1919.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