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 양주(楊州) 사람이다.
1908년 ≪초등대한역사(初等大韓歷史)≫·≪최신초등소학(最新初等小學)≫ 등이 교과서를 저술하여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월에는 장두철(張斗徹)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여 장두철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그는 서울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3월 장두철이 상해로부터 파견한 이종만(李鍾萬)과 더불어 구국단(救國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동단의 단장을 맡았다.
이들은 임시정부 의정원의 사령서(辭令書)를 인쇄하여 윤용구(尹容求)·한규설(韓圭卨) 등 백여명의 국내인사들에게 원로(元老)·상원(上院)·중의원(中議院)의 각 의원에 추천되었음을 통지하였으며 홍긍섭(洪肯燮) 등 23명에게는 피선서(被選書)를 우송하는 등 임시정부의 지원활동을 폈다. 또한 새로이 김두형(金斗衡)·서병두(徐丙斗)·이종한(李琮漢) 등 수십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납입명령서, 임시정부 재무부 인장, 임시정부의 국민의회 의원선임장 용지 등을 인쇄하여 전국의 부호에게 이를 배포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이후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에 힘을 쏟았는데 1920년 4월에는 김두형·권영만(權寧萬)이 모의 권총을 소지하고 충남 논산군의 부호 윤일병(尹一炳)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 5백원을 모금하였다. 또한 그는 김두형과 함께 동년 12월(음력) 충남 익산군의 부호 임병철(林秉喆)에게 군자금 납입을 요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혀 1922년 5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7호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2. 2. 14 경성지방법원)
- 조선민족운동년감 13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63·564·5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287·28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120∼11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