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소식에 접한 이수영은 평남 강동군 삼등면(三登面)의 천도교 삼등교구에서 교구장 백인덕(白仁德)·백관범(白琯範)·김성초(金成初)·장봉주(張鳳柱)·최붕익(崔鵬翼)·문선창(文宣彰) 등과 비밀회의를 열어 강동에서도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하여 문선창을 평양교구에 파견하였고, 시위운동 총대표로 백관범을 임명하였다.
이수영 등은 준비가 완료되자 시가(市街) 중앙인 홍문(弘門)앞 거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선포식을 거행하고 즉시 헌병대와 면사무소로 가서 시위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삼등면 동추리(東鄒里)에서 강동헌병분견소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급히 가던 조선인 헌병보조원 2명을 무장해제시키기도 하였다.
만세운동 이후에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여 만주로 망명, 오순근(吳淳根)·주석환(朱錫煥)·표영준(表永俊)·명덕상(明德相)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에서 박장호(朴長浩)·백삼규(白三圭)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였다.
그 후 대한독립단은 일부 세력이 다른 운동단체들과 결합하여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를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활동하자 이수영은 이 단체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0년 3월 임시정부에서 특파되어 국내로 들어온 김석황(金錫璜)을 여행렬(呂行烈)이 평양 기홀(紀笏)병원에서 만나 결사의용단을 조직할 것을 협의하였는데, 이 때 강동군 지부장에 선출되어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보내었다. 아울러 무기구입 활동도 전개하였다. 동년 5월에는 의용단 본부인 기홀병원에서 지부장 및 간부회의를 열고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동년 6월에는 평양에서 홍석운(洪錫雲)·여행렬·김송혁(金松赫)·주석환·임승업(林承業)·이기영(李起榮)·김동선(金東宣) 등이 이전으 일부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독립의용단(獨立義勇團)을 조직하자 이수영은 강동(江東)지단장을 담당하였다. 동단에서는 평안도, 황해도 및 서울을 중심으로 조직망을 확대하면서 우선 1천 명의 독립군을 모집양성하여 일제기관의 습격, 파괴활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동년 8월에는 미국의원단의 국내 입국을 앞두고, 평남 지단의 김예진(金禮鎭) 외 20여 명과 함께 대한일신청년단(大韓日新靑年團)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장덕진(張德鎭)·안경신(安敬信) 등과 연락하여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지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동년 9월 14일에는 평안남도에서 주석환·문창선·서달선(徐達善)·이근배(李根培)·한문기(韓文基) 외 여러 동지와 함께 성천군(成川郡) 대곡면(大谷面) 주재소를 습격하고, 1921년 2월에는 성천군 삼흥면(三興面) 묘산(卯山) 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이 때 일경 청목(靑木)을 사살하고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03·304·38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8·44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288·28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88·3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