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1909년 음력 7월 경북 풍기(豊基)에서 기의(起義)하여 부하 수백 명의 총대장이 된 후 한봉서(韓奉西)·박황성(朴璜成)·이인만(李仁萬)·김용태(金龍泰) 등을 부장(部將)으로하여 고유문(告諭文문)을 작성, 각처에 배포한 뒤 의병을 모집하여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또 동년 7월중에는 충북 보은군(報恩郡)·청주군(淸州郡)등지에서 면장 이상락(李相洛)외 3명으로부터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1909년 음력 8월에는 의병 30여 명을 인솔하고 경북 상주군 화북면(化北面)에서 밀정 정화춘(鄭化春)·김경모(金京模) 등을 처단하였으며 같은달 영천군(榮川郡)주막에서 부하 500여 명을 인솔하고 머무르던 중 일군의 포위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부하 5명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1909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는 회덕(懷德)·풍기(豊基)·청산(靑山)·청주(淸州)·보은(報恩) 지역에서 활약하다가 동년 10월 13일 러시아에 있는 이범진(李範晋)의병대장으로부터 국내의 모든 의병이 러시아로 모여 병비(兵備)를 정리한 후 다음해 3월을 기하여 일시에 항거하자는 제의를 받고 한봉서 등 부장 4명 및 부하 350여 명에게 무기를 휴대케하여 이범진 소재지에 보낸 후 의병을 더 모집하여 합진코자 국내에 머무르던 중 동월 15일 충북 영동경찰서 순사에 의해 붙잡혔다.
그후 1910년 2월 14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동년 3월 12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90∼392, 528∼536·83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