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4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제8중대 대원으로 평북 일대에서 일본 경찰관주재소 순사들과 교전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할신(高轄信), 민사부장 이웅해(李雄海),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이 선출되었다.
1924년 음력 7월경 관전현에서 대한통의부 제8중대에 입대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25년 음력 4월 초순경 이창식(李昌植) 등 5명과 함께 장총 등으로 무장하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5월 1일 평북 벽동군(碧潼郡) 학회면(鶴會面) 학상동(鶴上洞), 5월 9일 태천군(泰川郡) 강서면(江西面) 덕평동(德坪洞)과 강동면(江東面) 풍림동(豊林洞)ㆍ덕화동(德化洞)ㆍ암성동(岩城洞)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풍림동 석우시장(石隅市場)에서는 강동경찰관주재소(江東警察官駐在所) 도순사(道巡査) 대야금지조(大野金之助) 등 3명과 50분간 총격전을 벌였다.
1925년 5월 18일 영변경찰서에 체포되어, 같은 해 7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25년 9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12월 3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朝鮮日報(1925. 5. 23)
- 東亞日報(1925. 5.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