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중국 소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재무과장(財務課長)으로 함북 온성군(穩城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북로독군부는 1920년 5월 3일 봉오동에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광복단(光復團), 의군부(義軍府) 등 6개 독립운동단체 간부들의 연석회의가 개최된 뒤 같은 달 28일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의 국민회군(國民會), 최진동의 군무도독부(軍務督軍府)가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부장(府長)은 최진동이 맡았으며, 안무는 부관(副官), 홍범도는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部長), 주건(朱建)은 부관(副官)이 되었다.
이서오는 1920년 7월경 이창수(李昌秀)로부터 대한북로독군부장 최진동(崔振東) 명의의 재무과장 선임장을 받고 독군부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9월까지 경찰과장 변남조(邊南朝), 징모과장 조정훈(趙鼎訓) 등과 함께 군자금 120여 원을 모집하여 독군부로 보냈다. 같은 해 8월에는 독군부에서 보낸 독립사상을 선전하는 선유문(宣諭文)을 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이용해 수십여 장을 등사해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0년 10월 온성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7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1. 12. 2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控訴事件簿
- 每日申報(1920. 12. 12, 1921. 7. 8, 7. 9)
- 東亞日報(1921. 11.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687~691, 1172~11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