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강원도 회양(淮陽) 사람이다.
1920년 음력 4월경에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였다. 이봉선이 활동한 광복단은 3·1운동 후 대한제국을 받드는 인사들에 의하여 1920년에 조직된 단체로서 본부는 왕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 대감자(大坎子)에 두고, 지단의 다른 근거지는 안도현(安圖縣)에 두었다. 단원수는 약 450명이었으며, 주요 간부는 단장 이범윤(李範允), 대판(大辦) 김성륜(金成倫), 고문 김성극(金星極), 총무 홍두식(洪斗植), 참모 황운서(黃云瑞) 등을 들 수 있고, 안도현 지단의 지단장은 이승국(李昇國) 등이었다. 광복단의 본부의 단장 이범윤이었으나 그것은 그가 원래 거물이기 때문에 명의상 추대된 것으로 보이고 광복단의 실제 발기인과 조직자는 김성극이었으며, 독립군의 군사업무는 김성극·황운서 등이 담당하였다.
이봉선은 광복단에서 징모대장(徵募隊長)이 되어, 화룡현(和龍縣) 사대사(四對社) 서래동(西來洞)에서 40여 명의 주민들을 광복단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조학림(曺學林)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1920년 7월 29일 사대사의 남호기(南湖基)·나순종(羅淳鍾)의 집에 이르러 독립자금 2백 4십 원을 모금하였다.
1920년 8월 2일에는 북간도 용정(龍井)의 밀정으로 추정되는 일본인 내전민치(內田敏治)가 귀국을 위하여 회령으로 향할 때 차정극(車正極)과 함께 그를 암살하였다.
이처럼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이봉선은 결국 일경에 체포되어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1921년 4월 1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137·11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