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본에서 한국인 차별에 대항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두 차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희생되었다.
이동보는 진흥공립보통학교(鎭興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9년 7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2년 2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토목건축노동조합 성서(城西)지구 일모리(日暮里)분회 결성에 참여하여 책임자가 되었다. 일본에서 한인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과 항일운동에 종사하면서 성서지구 토목건축노동조합 재정부를 담당하였다. 1932년 4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가두반에 배속되었고 5월 노동계급사(勞動階級社)에 가입하였다. 이처럼 노동운동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동보는 1933년 2월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1935년 3월 12일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1936년 7월 17일 출옥하였다.
출옥후 이동보는 1936년 황천구(荒川區) 삼하도(三河島)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적색스포츠단을 결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그후 그는 1938년 6월 29일 일제 경찰에 의해 인민전선 관계자로 다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감옥에 수형 중 1943년 12월 22일 청진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325·3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435·554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決定文(高等法院:1944.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