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한일병합에 항거하여 중국 (中國) 서간도 (西間島) 로 이주한 후 한인 학교 (韓人學校) 에서 항일의식을 고취 하는 활동을 하고, 1919년 10월 서로군정서 (西路軍政署) 총재 (總裁) 이상룡 (李相龍) 으로부터 조선특별파견원 (朝鮮特別派遣員) 으로 국내에 파견된 후 1920년 3월 평양 (平壤) 에서 강성리 (康聖利) 를 만나 군자금 모집과 함께 주요 시설물 폭파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본인의 지도 하에 정찬도 (鄭燦道) , 백기환 (白基煥) 등과 모험청년단 (冒險靑年團) 을 조직하여 주요 시설물 폭파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옥고 (獄苦) 를 치르던 중 1924년 5월 8일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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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이근수는 1911년 중국 서간도(西間島)로 이주한 후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마호구(馬毫溝) 한인학교(韓人學校)에서 한문교사로 활동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0월 이근수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총재(總裁) 이상룡(李相龍)으로부터 조선특별파견원(朝鮮特別派遣員)으로 임명되어 국내로 들어왔다.
국내에 파견된 이근수는 1920년 3월 평양(平壤)에서 강성리(康聖利)를 만나 군자금 모집과 함께 주요 시설물 폭파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본인의 지도 하에 정찬도(鄭燦道), 백기환(白基煥) 등과 모험청년단(冒險靑年團)을 조직하여 주요 시설물 폭파를 준비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근수는 1920년 5월에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24년 5월 8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假出獄執行濟의 건 보고(京城刑務所長:1927. 4. 19)
- 每日申報(1920. 5. 19)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1권 分冊 419~420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5권 275·276면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日本 陸軍省)
- 判決文(高等法院:1921. 1. 29)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3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717·718·7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