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7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위하현(葦河縣)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유정근(兪政根)의 권유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민사부원(民事部員)으로 활동하였다.
신민부는 북만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상호 통합을 위해 1925년 1월 목릉현(穆陵縣)에서 부여족통일회의(夫餘族統一會議)를 개최하여, 같은 해 3월 10일에 영안현(寧安縣) 성내(城內)에서 조직되었다.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김좌진(金佐鎭)ㆍ최호(崔灝), 대한독립군정서(大韓獨立軍政署)의 김혁(金赫)ㆍ조성환(曹成煥)ㆍ정신(鄭信) 등이 주도하였다. 발족 직후 독립군의 편성과 훈련에 주력하였으며, 군사부위원장 김좌진의 지휘하에 보안대(保安隊)와 별동대(別動隊)를 두었고 지방마다 총판(總辦)을 두어 교민을 위한 자치행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1927년 8월 이중삼(李重三) 등 특수공작대를 국내에 밀파하여 일본 군경의 주둔 배치 조사와 작전 지도를 작성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해림(海林) 지역의 초대 조선인민회장 배두산(裵斗山)의 처단을 비롯하여 북만지역의 친일 단체에 대한 공격, 친일 반역자를 응징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윤영순은 1927년 7월경 신민부 민사부원으로 활동하다 1928년 2월 중동선(中東線) 석두하자참(石頭河子站)에서 개최된 신민부 총회에서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경찰대와 연합한 중국경찰대의 공격을 받아 중앙집행위원장 김혁을 비롯하여 유정근 등 10여 명의 중앙 간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1928년 4월 4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으며, 재판 과정 중 신의주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8. 2. 4, 10. 30)
- 朝鮮日報(1928. 10. 23, 10. 24)
- 每日申報(1928. 4. 6, 1929.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