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운산군(雲山郡) 출신이다. 17세에 중국 봉천성 환인현 이차구(裡岔溝)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의식을 가지면서 1919년 4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총무원(總務員)을 맡았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 직후 만주 각 현(縣)에 흩어져 있던 의병계열의 인물들이 모여 조직한 복벽주의(復辟主義) 이념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본부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고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 백삼규(白三圭), 자의부장(咨議部長) 박치익(朴治翼),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등이 활약했다.
윤선두는 대한독립단 총무원으로 호수(戶數)의 증감, 공문 배포 등을 수행했다. 1920년 8월경 윤선두는 대한독립단 지단장인 홍승국(洪承國) 등 30여 명과 함께 환인현 이차구에 머물면서 중국인 손재동(孫在東)과 교섭하여 총기 구입을 시도했다. 중국인 정(程) 씨로부터는 권총 2정과 탄환 2개를 구입했다.
이러한 무기 구입 활동으로 인해 안동(安東)의 일본영사관 분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이 선고되어 상고했으나 1921년 2월 3일 기각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2007) 제43권 49, 3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권 727~7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