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홍원(洪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향리에서 독립만세시위 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군비단은 1919년 3월 만주지역에서 3·1운동이 전개된 후 동년 5월경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대안(對岸) 장백현(長白縣)에서 함경남도 출신의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19년 11월 1일경 이 단체의 주요 간부는 단장 이태걸(李泰杰), 부단장 김동준(金東俊), 총무장 김찬(金燦), 재무장 이동백(李東白), 경무부장 이광랍(李光拉), 참모장 서병호(徐丙鎬) 등 이었다.
또한 대한독립군비단에서는 1920년 2월, 운동을 보다 활발히 전개하기 위하여 조직을 보다 확대개편하였는데 이 때 윤덕보는 재무부장으로서 단장 이은향(李殷鄕), 부장(副長) 이태걸, 군사부장 이동백, 참모부장 김찬, 경찰부장 정삼성(鄭三星), 문사(文事)부장 김종기(金宗基), 외교부장 조훈(趙勳), 소집부장 김정익(金鼎益), 공창부장 김진무(金振武)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한편 윤덕보는 1921년 6월 장백현 16도구(道溝) 신창동(新昌洞)에 위치한 대한독립군비단 본부총단의 산하기관인 통신사무국에서 국장 대리로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동년 11월에는 총단장으로서 총무장 한기호(韓基鎬), 비서부장 한동초(韓東礎), 재무부장 이광춘(李光春), 통신부장 이현인(李顯寅), 향군부장 이재화(李在華), 소집부장 장기선(張基善), 의용부장 임극렬(林克烈), 경호부장 임병극(林炳極) 등과 함께 일하였다.
한편 대한독립군비단이 1921년 10월 흥업단(興業團) 등 주변 독립운동단체들과 연합하여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조직하였을 때 윤덕보는 총무로 선임되었다. 당시 이 단체의 주요 간부는 회장 김호(金虎), 부회장 이은향,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서무부장 석계(石桂), 군사부장 김찬, 경호부장 한창언(韓昌彦), 비서 김용대(金容大) 등이었다. 아울러 윤덕보는 동년 10월 20일 각 단체들의 발기로 장백현에서 독립운동세력을 후원하는 농민회를 조직할 때 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22년 8월경 장백현에서 군비단·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 등이 대한광정단(大韓匡正團)을 조직하였을 때는 총무장으로서 단장 김호,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과 더불어 일하였다. 그리고 1923년 6월에 군사관계외에 문화, 산업 방면에도 유의하여 간부진을 새로이 선임할 때에는 윤덕보는 단장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한편 1923년 상해에서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윤덕보는 창조파(創造派)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러시아 공산당을 모범으로 하여 위원제 중심의 중앙기관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동년 6월에 한국국민위원회(韓國國民委員會)를 조직하는 데 찬성하고 국무위원을 선출하는 데 참여하였다.
윤덕보는 정의부(正義府)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가 활동한 이 정의부는 1924년 11월 25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 8개단체 대표 25명이 참가한 가운데 길림(吉林)에서 조직되었다. 정의부는 조직되자 곧 헌장과 선언을 발표하고 아울러 중앙행정위원으로 이탁·오동진(吳東振)·현정경(玄正卿)·김용대(金容大)·이진산(李震山)·김형식(金衡植)·이청천(李靑天) 등을 선임하여 정의부 조직을 완료하였는데, 이 때 윤덕보는 행정위원으로 일하였다.
한편 정의부가 발족된지 수개월 후인 1925년 말부터 정의부 자체에 심한 내분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정의부 지도자 이상룡(李相龍)의 임정국무령(臨政國務領) 취임문제 때문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동년 7월 4일 임시의정원에서 개정한 헌법에 따라 국무령제를 신설하고, 국무령에 이상룡을 선임하였다. 이에 이상룡은 동년 9월 24일 국무령에 취임하였으며 10월에 내각을 조직하였다. 이 때 윤덕보는 윤세용(尹世茸)·김좌진(金佐鎭)·현천묵(玄天默)·조성환(曺成煥) 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삼시협정(三矢協定) 등으로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계가 상당히 난관에 봉착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만주독립운동계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재만독립운동단체의 상위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윤덕보는 정의부의 중앙행정위원장·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27년 8월에는 정의부 특별위원으로 길림성(吉林省) 길림성(吉林城) 부근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0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52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1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9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