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윤덕배는 1911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에서 동청선인공의회(東淸鮮人公議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912년 친화배일(親華排日)을 제창하면서 조선총독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1916년 2월 통화현(通化縣)에서 서당을 설립하고 한인 자제들에게 한문(漢文)을 교육하였으며, 이주 한인들에 대해 중국으로의 귀화(歸化)를 권유해 일제의 한인들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고자 하였다.
이후 윤덕배는 1919년 3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참의장(參議長)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이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본부는 유하현 삼원포에 두었으며, 도총재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 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이후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
윤덕배는 1919년 4월 집안현(輯安縣) 운지구(雲芝溝)에서 통구(通溝)의 조선인조합총지부 및 일본순사,헌병을 처단하기 위한 준비를 수행하다가 자결(自決)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에 관한 건(國外日報 제56보):上海方面, 圖們江方面, 鴨綠江方面(1919. 4. 29),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일본육군성)(7)
- 독립신문(1921. 4. 2)
- 鴨綠江 對岸 鮮人의 情況(憲機 제638호, 1911. 4.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
- 西邊界 近況 報告의 건(朝甲發 제1508호, 1911. 6.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
- 楚山郡 對岸 面長 會議의 건(朝機密發 제78호, 1911. 7.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
- 鴨綠江 對岸 狀況(朝憲機 제2736호, 1911. 12. 2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
- 陰謀 朝鮮人 首領者에 관한 건(天野恭太郞(公 제547호, 1912. 9. 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
- 排日 鮮人 調査의 건(公 제582호 , 1912. 10.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130면
- 3月 上旬의 韓族會와 獨立團의 狀況(朝鮮軍參謀部, 1920. 3. 16),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일본육군성)(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