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유상돈은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1909년 일경에 체포되었다. 또한 벽동군(碧潼郡)에서 '수주(守主)'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의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파옥, 탈출하였다. 이후 유상돈은 러시아로 이주하여 권업회(勸業會) 경찰부원(警察部員)으로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1911년 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였다. 창립 발기는 이종호(李鍾浩), 엄인섭(嚴仁燮) 등에 의해 이루어졌고, 창립총회에서 회장 최재형(崔才亨), 부회장 홍범도(洪範圖) 등이 선임되었다.
권업회는 한인의 실업을 권장하고 직업과 일터를 알선하며 생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저축을 권장하고 상애(相愛),상신(相信)의 친목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받기위한 편의였다. 권업회 조직 목표는 시베리아 한인사회 각계 각층의 항일 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가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조국독립의 최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었다. 1915년 경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21형제(兄弟)'라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1918년 10월에는 중국 목릉현(穆陵縣) 팔면둔(八面屯)에서 일본군 출병에 저항하여 약 150~300여 명을 결집시켰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유상돈은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결성된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 이사에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선임되었다. 노인동맹단은 원래 1912년 신한촌에서 조직되었다가 3,1운동 이후 확대, 개편된 조직이다. 노인동맹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독립운동자금 모집,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사이토(齊藤) 총독의 암살을 기도했던 강우규(姜宇奎)도 노인동맹단의 단원이었다.
노인동맹단에 참여한 뒤 유상돈은 러시아 이만지역에서 민회장(民會長)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독립단결사대장(朝鮮獨立團決死隊長)으로 1922년 러시아인 오르소닌으로부터 '조선 내지에서 공산주의 선전'을 의뢰받은 치타 공산학교(共産學校) 졸업생 한경서(韓京瑞) 등과 함께 협의한 뒤 국내에 선전원(宣傳員)을 파견하였다.
1924년 9월에는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의 후원과 이동휘 지도 아래 중국 목릉현(穆陵縣) 소수분(小綏芬)에 조직된 동양혁명대의단(東洋革命大義團)의 집행부장(執行部長)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사전(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 제3권 472~476면
-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浦潮斯德 總領事 : 1920. 1.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在西比利亞(9)
- 不逞鮮人의 共産主義 宣傳計劃에 關한 件1(吉林總領事 : 1922. 3.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鮮人과 過激派(2)
- 獨立運動史料(국가보훈처) 제6집(일본편⑭) 170~171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3권 24면
- 間島 接壤 不逞鮮人團의 行動에 關한 件(間島總領事 : 1924. 9.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在滿洲의 部(40)
- 鮮人騷擾事件:鴨綠江岸 附近에 있어서의 不逞鮮人의 狀況(外務大臣 : 1921. 3.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在西比利亞(1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집 1112면
- 排日鮮人의 處分에 關하여 露國側에 交涉의 件(外務大臣 : 1916. 6.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在西比利亞(6)
- 新韓民報(1909. 4. 28)
- 露領方面 情況 彙報(1918. 10.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不-在西比利亞(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