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6년 참의부에 입대하여 평북 초산과 위원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전개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5년 만주로 건너가 1926년 참의부(參議府)에 입대하여 제2중대에 편입되어
중대장 김용택(金龍澤)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1923년 대한민국임시정
부 개조문제를 둘러싸고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내에서 중앙부와 의용군(義勇
軍) 간의 이견이 생기자, 임시정부 중심의 통일을 주장하던 의용군을 중심으로
1923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일명 참의부)를
창립하였다.
1926년 5월부터 12월까지 박시상(朴始相, 일명 朴東一)·이영만(李永萬) 등 10
명의 부원들과 함께 평북 초산(楚山)과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하고
밀정을 처단하였다.
1928년 4월 초산경찰서 경찰에게 붙잡혀 1929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강도방화·주거침입·강도치상미수·살인·살인미수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12년 8개월 20일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料(국가보훈처 수집자료) 中國篇 91면·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21면
- 東亞日報(1929. 6. 29, 10. 5, 10. 12)
-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1941. 1. 21),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9. 10. 8) 假出獄關係書類
- 朝鮮日報(1929. 6. 28, 10. 5, 10. 10)
- 中外日報(1929.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