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오천금은 1903년 6월 14일 함경북도(咸鏡北道) 무산군(茂山郡) 삼장면(三長面)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만주로 이주하여 1920년부터 독립운동 단체인 야단(野團)의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야단은 3.1운동 직후 북만주 중동선(中東線)의 청림교도(靑林敎徒)들이 조직한 청년단체이다. 이들은 청년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고 항일 투쟁을 준비하였다.
오천금은 1920년 음력 5월 야단의 과장 이길언(李吉彦)과 회원 석이재(石二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리하여 안도현(安圖縣) 홍기하사(紅旗河社) 내광평(內廣坪)과 동경평(東京坪) 주민들에게 군자금 징수 명령서를 배포했다. 장림평(長林坪)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주민 약 10여 명을 야단에 입회시키고 입회금으로 1명당 금 3원씩을 징수했다.
이후 수정동(水偵洞) 김경렬(金京烈)에게 150원의 군자금을 요청했고, 직동(直洞) 박희섭(朴希燮)에게도 군자금 100원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체포된 오천금은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제령(制令) 제7호‧강도미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1922년 1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 1922. 1.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