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만주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소속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군비단은 서간도의 장백현(長白縣)을 무대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1919년 이희삼(李熙三),이영식(李永植),이병호(李炳浩)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군비단의 총단장은 이희삼이 맡았고 3개 소대로 구성된 1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중대장은 이영식, 참모장은 이병호가 담당하였다. 제1소대가 28명으로 구성되었다. 지역별로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지단장 및 지부장 밑에는 총무,재무,서기,통신사무원 등이 임명되어 있었다. 이후 군비단은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흥업단(興業團), 광복단(光復團), 태극단(太極團),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등과 연합하여 지속적인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오주천은 1919년부터 길림성 장백현 17도구(道溝)에 거주하면서 1921년 군비단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1월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어 심하게 구타 당했으며, 1925년 3월 1일 장백현 자신의 집에서 독립선언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한민보(1922. 3. 3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726면,
- 독립운동사료-중국편(63)(국가보훈처, 2009) 61면
- 독립신문(1922. 2. 20)
- 獨立運動에 관한 건(國外 제34보, 騷密 第301號, 1919. 4. 17),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일본육군성, 1920)(7)
- 國外의 所謂 獨立宣言紀念日 狀況에 관한 件 1 (高警 제1090호, 1925. 3. 3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