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한족회(韓族會)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조선이 강점된 후 많은 애국지사들이 만주지역으로 망명하였다. 그들은 이 지역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적절한 시기가 오면 국내로 진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그들은 압록강 대안지역인 서간도지역에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등 한인의 자치기구이자 독립운동기관을 설치하였다. 아울러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개교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이 이처럼 활발히 독립전쟁에 대비하고 있을 때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영향은 서간도 지역에도 미치게 되어 독립운동이 보다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서간도지역에는 3·1운동 이후 30여 개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내로 진공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놀란 일제는 서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의 활동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일차적으로 그들의 말에 잘 순종하는 중국 현지 당국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탄압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5월 31일에는 오래전부터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 중심지였던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를 습격하여 많은 한인들을 체포투옥하였다. 이어 훈춘(琿春)사건을 빙자하여 만주로 출병한 일본군은 10월 하순경부터 관전(寬甸)·통화(通化) 등 서간도 지방 각지에서 독립군 수색을 빙자하여 방화·살인·약탈 행위를 도처에서 자행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고 있을 무렵 오의순은 한족회의 청년단원 및 지방서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던 한족회는 1919년 4월 초순 이상룡(李相龍)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조직한 한인자치기구이다. 이 단체에서는 재만 동포들에 대한 자치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유하현 삼원보(三源堡) 시가에 본부인 중앙총부(中央總部)를 두고 그 최고 책임자로 이탁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서무사장 김종훈(金宗勳), 사판(査判)사장 이진산(李震山), 학무사장 김형식(金衡植), 재무사장 남정섭(南廷燮), 상무(常務)사장 김정제(金定濟), 군무사장 양규열(梁圭烈), 내무사장 곽문(郭文), 검사감 최명수(崔明洙) 등을 두어 재만동포의 치안·재무·사법·행정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한편 한족회는 지방자치조직도 체계화 하였다. 당시 한족회의 지방조직은 유하현·통화현(通化縣)·흥경현(興京縣)·환인현(桓仁縣)·집안현(輯安縣)·임강현(臨江縣)·해룡현(海龍縣) 등지에 걸쳐 있었으며, 호수는 1만여 호에 달하였다. 이곳에 한족회는 동포 1천 호마다 1명의 천가장(千家長)을, 1백호마다 백가장(百家長)을, 10호마다 십실장(十室長) 1인씩을 두었다. 이러한 한족회의 자치조직은 1912년부터 조직되어 있었던 부민단 등의 체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한족회의 지방자치는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재만한인 사회의 대표적인 한인자치기구에서 청년회원 및 지방 서기로 활동하고 있던 오의순은 1920년 11월 통화현에서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민족독립운동사사료(해외편) 11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전권 7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64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59면
- 현대사자료(강덕상) 제28권 4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