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광정단(光正團)과 정의부(正義府) 소속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만주 화전현(樺甸縣)에서 성립된 독립운동 단체였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조직을 설치하고, 하얼빈 이남의 40여 개의 현(縣)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한편, 의용군(義勇軍)을 편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앙행정위원회 위원장 이탁(李沰)이었으며, 중앙행정위원은 현정경(玄正卿), 지청천(池靑天), 이진산(李振山), 김용대(金容大), 김이대(金履大), 윤병용(尹秉庸), 오동진(吳東振), 김동삼(金東三)이었다.
정의부의 무장투쟁은 의용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진공작전이 이루어졌으며, 만주 내에서의 무장활동은 모험대(冒險隊) 또는 암살대(暗殺隊)라는 명칭의 전투부대와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한 모연대(募捐隊) 등이 활동하였다. 그리고 관할지역 한인사회의 자위를 목적으로 한 보안대(保安隊) 등을 편성했는데 특히 보안대는 의용군이 아닌 각 지역의 청장년이 그 지역의 안위를 위해 편성한 지역대였다. 이들은 만주지역 내의 친일세력이나 일제 경찰에 대한 처단에 주력하였다. 이후 정의부 주력은 삼부통합운동(三府統合運動)을 거쳐 국민부(國民府)로 발전하였다.
오찬순은 1922년 음 9월 봉천성(奉天省) 장백현(長白縣) 13구(溝) 삼수동(三水洞)으로 이주하였으며, 광정단(光正團)의 지방부 총무 김문보(金文甫)의 권유에 의하여 동단(同團)에 가입하여 통신사무, 경호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일본 및 중국관헌의 수사 동향 조사,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정의부 소속으로 영성주재소(嶺城駐在所)를 습격하는 등 평남(平南),함남(咸南)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9년 12월 맹산경찰서(孟山警察署)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오찬순은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 1930. 12. 24)
- 假出獄關係書類(국가기록원 소장)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9. 1. 22, 2. 2)
- 朝鮮日報(1930.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