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4월 함남 이원에서 대동단에 가입하고 상해를 거쳐 간도로 건너간 뒤 1920년 3월 중국 화룡현의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 까지 함경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 하순 함남 이원(利原)에서 광부로 일하던 중, 대동단(大同團) 단원 홍성일(洪聖一)의 권유로 대동단에 가입하였으며, 1920년 1월 상순 상해를 거쳐 간도로 건너가 같은 해 3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였다.
대한국민회는 3·1운동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더불어 북간도지역을 대표하는 항일독립운동단체로,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본부를 설치하고, 동· 서·남·북·중 등 5개 지방회와 70개에 달하는 지회를 설치하였다.
화룡현(和 龍縣) 소재 대한국민회 서부지방총회(西部地方總會)에 가입한 그는 서무부장 홍 정도(洪正道) 휘하에 배속되어 서무부 서기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10월 서부지 방총회장 한대진(韓大震)으로부터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국내로 파견되었다.
1921년 4월까지 함경남북도 일대를 순회하며 무산(茂山)의 김약연(金若淵), 명천 (明川)의 김계태(金桂太)·김한송(金漢松), 길주(吉州)의 문희종(文鍾熙), 성진(城 津)의 이효근(李孝根)·양진홍(梁珍鴻)·이화선(李化善)·이왕담(李王錟), 함흥(咸 興)의 이배식(李培式)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약 1,000여 원을 모집하였다.
1921년 4월 21일 함흥 읍내에서 삼성병원(三省病院) 이배식을 위장 방문하였 으나, 매복한 함흥경찰서 경찰에게 발각되어 격투 끝에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1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폭발물취체벌칙 위반·대정(大 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3 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 다 1927년 5월 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日報(1921. 5. 17, 8. 4)
- 東亞日報(1921. 5. 29, 6. 21, 1927. 5. 10)
- 每日申報(1921. 5. 29, 6. 7)
- 獨立新聞(1921. 8. 15)
- 高等警察關係年表(朝鮮總督府警務局, 1930) 63면
- 大韓國民會 軍資金 募集員 檢擧(1921. 6. 4)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2)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1권 分冊 611~613면·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