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만주 (滿洲) 집안현 (輯安縣) 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1919년 3·1운동시 (時) 에 동포 수 백명을 회집 (會集) 하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 하며, 성내 (城內) 로 행진 후 일민단사무소 (日民團事務所) 를 파괴하는 등 활동하였으며, 동지 (同志) 원해룡 (元海龍) , 박한조 (朴漢祚) 등과 함께 독립단 (獨立團) 조직을 계획하다가 동리 (同里) 에 거주 (居住) 하는 밀정 (密偵) 강달주 (姜達周) 등의 밀고로 일경 (日警) 에게 발각되어 심산 (深山) 에 도피하였다가 1920. 12월 산중 (山中) 에서 동아 (凍餓)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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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초산(楚山) 사람이다.
1910년 일제의 강점후 만주 집안현(輯安縣)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1919년 3·1운동시 인근의 청년 수백 명을 모아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성내(城內)로 향하다가 중국관리들의 저지를 당하여 귀환하던 도중 일경이 설립한 일본 민단(民團) 사무소를 파괴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동지 원해용(元海龍)·박한조(朴漢祚) 등과 함께 독립단 조직을 계획하던중 동리(同里)에 거주하던 밀정 강달주(姜達周)·강익주(姜益周)·지종언(池鐘彦)·석병국(石炳國)·전성실(田成實) 등이 일본 민단 사무소를 파괴하였다고 밀고하여 일경에게 다수에 걸쳐 집을 수색당하였으며, 처자(妻子)도 모두 구타당하였다.
이에 주일관은 깊은 산속에 은거하면서 활동하다가 1920년 12월에 산중에서 동아(凍餓)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신문(192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