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이동휘(李東輝)의 장녀로서 1902년경 부친이 경기도 강화도(江華島) 진위대장으로 활동하게 되자 할아버지 이발(李發), 동생 의순(義橓) 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와 성장했다. 1906년 부친 이동휘가 강화보창여소학교(江華普昌女小學校)를 설립하자 이 학교에 입학 졸업하였고, 한성연동정신학교(漢城連洞貞信學校)를 졸업한 후 17세의 나이로 함흥(咸興), 성진(城津)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2년에는 가족이 모두 북간도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하자 그곳에서 조선여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아울러 이인순은 여성교육에 힘쓰면서 이동휘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여성계의 개조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1918년 가을 가족들이 이동휘의 지시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 정착하게 되자, 이인순 역시 남편 정창빈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였으며, 이곳에서 경제적으로이동휘를 돕기 위하여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11월 장티푸스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작고하였다.
1920년 1월 17일 오후 2시 주상해(駐上海) 대한애국부인회 주최로 작고한 이인순과 하란사(河蘭史)·김경희(金敬喜) 등의 추도회가 강령리(康寧里) 민단(民團)사무소 내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내빈으로 안창호(安昌浩)·김립(金立)·윤현진(尹顯振) 등 상해 유지인사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학연구(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3. 7) 제5집 별집, 리동휘 성재선생(리영일) 184·188·204·289∼290면
- 독립신문(1920.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