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참의부(參議府)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제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참의부는 1923년 남만지역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통합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간부들 사이의 이념분쟁으로 분열되는 상황에서 결성되었다. 통의부의 일부 무장대원인 백광운(白狂雲), 조능식(趙能植), 박응백(朴應伯), 김원상(金元常), 조태빈(趙泰賓)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임시정부 직속의 남만군정부(南滿軍政府)로 인정받는 한편, 그 정식 명칭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하였다.
1923년 9월 정식으로 결성된 참의부는 집안(集安), 무송(撫松), 장백(長白), 안도(安圖), 통화(通化), 유하(柳河)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참의부의 부대 편성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에 백광운, 제2중대장에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에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에 허운기(許雲起), 중앙의회 의장에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民事部長)에 김소하(金筱廈) 등이 임명되었다. 민사부의 관할 구역은 13개 지방행정구로 나누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대 초반 만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군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손용준은 1924년 8월 참의부 제1중대(中隊) 참사(參士)로 밀정처단(密偵處斷)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봉천성 통화현(通化縣)에서 독립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일본군의 동향을 정찰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손용준은 1931년 12월 15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制令) 제7호 및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1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0권 909면
- 中央日報(1931. 12. 17)
- 東亞日報(1931. 7. 19, 12. 1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10권 173, 336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195면
- 豫審終結決定(新義州地方法院:1930. 11. 24)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권 208~213면
- 길림성당안관자료(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