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강원도(江原道) 고성군(高城郡) 현내면(縣內面) 출신으로 15세에 가족과 함께 중국 만주(滿洲)로 이주했다. 1926년 3월 길림성 해림에서 한규범(韓奎範)의 소개로 한인 군정부인 신민부의 해림경무소원(海林警務所員)으로 활동했다.
그가 속한 신민부는 북만주(北滿洲) 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하여 1925년 1월에 개최된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의 결과로 조직되었다. 신민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대종교(大倧敎)를 믿었고, 서광수도 1926년 12월 당시 대종교 동이도(東二道) 교구 찬무(贊務)를 담당하고 있었다.
1928년 1월 25일 일제 경찰과 중국군 1개 중대의 습격으로 신민부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장인 김혁(金赫)과 경리부 위원장 유정근(兪正根) 등이 체포되었다. 일제 경찰은 이를 기회로 2월 21일 중동선(中東線) 해림에서 신민부의 간부인 한규범‧이덕재(李德載) 등을 체포하기 위해 한인 가옥을 수색했다.
이때 해림경무소원 서광수를 비롯한 남한송(南漢松)‧남상렬(南相烈) 등이 체포되어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12월 14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2. 27, 1929. 6. 10)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2. 29, 10. 30, 1929. 5. 26, 6. 9, 6. 14, 1932. 2. 17)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4. 6, 1929. 5. 27, 6. 29, 1932. 2. 17)
- 조선일보(朝鮮日報)(1928. 10. 23, 10. 24, 1929. 2. 12, 6. 29)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2013) 중국편(154) 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4집 925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