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구성(龜城) 사람이다.
평소 성품이 강직하고 절개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흠모하는 대상이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이 후 무도한 일제를 멸하고 조국의 강토를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에 전념하였다. 특히 그는 만주에서 풍찬노숙을 하는 고초를 겪으면서 재만동포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의 고취에 노력하는 한편 친일단체인 일민단(日民團)을 토벌하는 활동 등을 적극 전개하였다.
1923년 그는 친일파인 강달주(姜達周)에게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였으며, 상처가 너무 심하여 죽을 지경이 되어 방면되어 귀가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 항일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고문의 상처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으며, 그의 한을 임종시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하였다.
내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사(死)하니, 이가 가장 한이로다. 아(我) 사후(死後)에 독립이 되거든 아(我)의 분묘에 와서 고(告)라.
이 유언을 통해서 볼 때 원해용이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기원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신문(1923.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