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김천(金泉) 사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조선이 강점되자 1911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1년 10월 서간도지역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4개단체가 통합하여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조직하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1922년 2월 3일 김화성·이백현 등과 함께 서무부에서 활동하였다.
한편 1922년에 광정단(匡正團)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여 총무를 역임하면서, 무송(撫松)·장백(長白) 등지에서 단원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8월,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될 무렵, 장백현(長白縣)에서는 대한독립군비단·흥업단·태극단·광복단 등 4개단체가 통합하여 조직한 것이다.
광정단 조직 당시 주요 간부를 보면, 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장 윤덕보(尹德甫),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을 들 수 있다.
석기만이 참여한 광정단은 조직 후 군사적인 조직과 훈련을 통하여 항일역량을 강화하여 나갔으며, 1923년 봄에는 중앙 총본부를 무송현(撫松縣)에 두고, 임강현(臨江縣)에는 따로이 암살단을 두어 활동하였다. 또한 1923년 6월 중에는 이러한 군사활동 외에 문화, 산업 방면에도 유의하여 조직을 개편하였는데, 당시의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단장 윤병용(尹秉庸), 부단장 김호익, 비서 김성진(金聲振), 재무부장 김국태(金國泰), 서무부장 장승언, 경호부장 정철명(鄭哲明), 군사부장 이한평(李漢平), 군법과장 김용대(金容大), 문화부장 한성일(韓性一), 산업부장 최진용(崔鎭鏞) 등이었다.
석기만은 1923년 9월 12일에 장백현 17도구(道溝) 동평덕(東平德)에서 윤덕보와 함께 투숙하면서 활동하던 중 동월 13일 새벽 5시경 친일 중국보갑병(保甲兵) 13명의 습격을 받고 탈출하던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445면
- 독립군의 수기(국가보훈처) 89·96면
- 독립신문(192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