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충청남도(忠淸南道)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출신으로 1926년 봄 만주(滿洲)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정의부에 가입하고 해원(海原) 지방 통신원으로 임명되어 군자금을 모금했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중국 만주 화전현(樺甸縣)에서 성립된 남만주의 군정부로서 한인 자치와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이를 위협으로 간주한 철령(鐵嶺) 일본영사관 경찰서는 1928년 10월 14일 정의부 대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만주 개원현 이가대(李家臺)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정의부 개원지방 공소(公所) 제3구(第3區)의 지도자인 집행위원장(執行委員長)을 체포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음날인 10월 15일 저녁 청원현 흥륭대(興隆臺) 김상록(金常錄) 집에서 일제의 정의부 대원 체포 작전이 다시 시도되었다. 이에 박장규는 다른 정의부 대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의 추격을 저지하면서 교전을 벌인 끝에 체포되었다. 1928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12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한민보(新韓民報)(1928. 11. 22)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10. 2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국외용의조선인명부(國外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 경무국, 1934) 2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