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平安北道) 초산군(楚山郡) 판면(板面) 출신으로 만주에서 활발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17년 만주(滿洲)로 건너가 농업에 종사하다가 독립군에 합류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조직된 군정부(軍政府)가 같은 해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소속되면서 서로군정서가 되었다. 1921년 박시봉은 이러한 서로군정서 의용대(義勇隊)의 제1소대장 김용흥(金龍興)의 명령으로 의용대 통신원(通信員)이 되었다. 그는 통신원의 임무를 받아 집안현(輯安縣) 대평구(大平溝) 신흥리(新興里)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관할했다.
1924년부터는 남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하여 조직된 참의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채찬(蔡燦) 등이 이끄는 참의부는 조선총독 저격 시도와 국내 진공 작전 등 적극적인 항일 무장투쟁 능력을 보여주었다. 박시봉도 같은해 1월에 집안현 강창구(江昌溝) 동곡(東谷)에서 일제 경찰 밀정을 살해하고 8월에 대평구 신흥리에서 친일 조선인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초산경찰서에 의해 발각되자 체포되어 신의주 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1930년 6월 2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살인‧제령(制令) 위반’으로 징역 10년이 구형되었다. 10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이 선고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6. 15, 6. 2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