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된 후 다수의 항일인사들이 만주, 중국본토, 러시아 등지로 망명하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일제의 추격을 받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국외로 이동함으로써 해외에서의 항일운동은 보다 활성화되었다. 망명인사들 중 무장투쟁에 관심이 있는 인물들이나 또는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가운데 일부는 주로 만주지역으로 망명하였다. 특히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들은 서간도 지역으로 망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강희경은 향리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만주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집안현(輯安縣) 등 각 지역에서 통신사무를 담당하여 독립군과 주민, 그리고 독립군 사이의 연락 사무 및 일제의 동정 파악 등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강희경의 이러한 활동은 독립운동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임무로서 항일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처럼 서간도 지역에서 활발히 연락 및 정보 수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에 협조하는 중국 병사에게 체포되어 집안현 감옥에서 고초를 겪게 되었다. 그 후 1923년경 일본 경찰에 신병이 인도되어 일경 성야(星野)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신문(1923. 3. 7)